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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말하는 한국문화

캐나다인은 왜 한국에선 친구에게 반말을 쉽게 하는지 궁금했다 – 말투로 보는 관계의 문화 차이

by info-srch 2025. 4. 11.

1. 문화 충돌 사례: “갑자기 반말?” – 캐나다인 리사의 혼란

리사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온 교환학생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한국어와 문화를 배우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어울리게 되어 기뻤다. 한국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노래방에도 가며 유쾌한 일상을 보내던 중, 어느 날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가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늘 존댓말로 대화하던 동갑내기 친구가 갑자기 반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몇 시에 올 거야?”
“이따 같이 밥 먹자~”

리사는 메시지를 보고 눈을 비볐다. 실수인가 싶었지만, 이후에도 반말은 계속되었고, 심지어 직접 대면해서도 자연스럽게 반말을 사용하는 친구를 보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캐나다에서는 말투 변화가 곧 관계의 변화나 태도의 변화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리사는 자신이 무례하게 행동했나 고민했고, 속으로 상처를 받았다.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혹시 내가 기분 나쁘게 한 게 있어?”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아니야~ 이제 우리 친구니까 반말 쓰는 거야!”였다.
그 말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리사는 ‘친하다는 이유로 말투가 바뀌는 것’이 낯설었다. 한국에서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편했다.

 

2. 캐나다의 언어 문화: 공손함이 곧 평등의 표현

캐나다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이지만, 그 안에서 공통적으로 자리 잡은 사회적 규범이 있다. 바로 “존중은 말투에서 시작된다”는 인식이다. 이는 단순히 예의를 차리는 차원을 넘어, 인간관계의 기본 토대를 이루는 문화적 감수성으로 작용한다.

영어에는 한국어처럼 명확하게 구분된 존댓말과 반말의 체계는 없지만, 대신 단어 선택과 문장의 톤을 통해 공손함과 거리감을 섬세하게 조절한다. 예를 들어, 친구 사이에서도 "Can you...?"보다는 "Could you possibly...?", 혹은 "Would you mind if I...?" 같은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때는 명령형을 최대한 피하고,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형태로 말하는 것이 예의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투 자체가 인간관계의 기본 태도로 작동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말투를 바꾸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나이나 직위보다 개인 간의 존중이 먼저이며, 그 존중은 말의 방식과 말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리사는 그 점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인물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말투는 단순한 표현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심리적 거리와 존중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그래서 한국 친구가 별다른 설명 없이 갑자기 반말을 쓰기 시작했을 때, 리사는 그것을 '편해졌다'는 표현이 아니라, '상대가 관계의 규칙을 일방적으로 바꿨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왜 갑자기 이렇게 말하지?”, “내가 뭔가 실수했나?”라는 혼란을 느꼈고, 점점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의 감정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소외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말투는 그 자체로 감정의 언어였고, 리사에게는 관계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즉, 말투가 달라졌다는 것은 단순히 말의 형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리사의 시선에서는 관계의 성격이 일방적으로 조정된 순간이었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감정이었다.

 

캐나다인은 왜 한국에선 친구에게 반말을 쉽게 하는지 궁금했다

3. 한국의 반말 문화: 친밀함의 언어적 전환

한국에서는 ‘반말’이 단순한 말투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작용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대부분 예의를 갖춰 존댓말로 대화하지만, 시간이 지나 서로 친밀해졌다고 느껴질 때 “우리 이제 반말할까?”라는 말을 건네며 관계를 다시 정립한다. 이 한마디는 겉보기엔 말투 제안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친구로 받아들이겠다는 문화적 신호에 가깝다.

특히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이 차이가 없거나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반말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친밀감 표현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서열 중심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은 유교 문화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아온 사회로, 나이나 직급, 사회적 위치에 따라 언어의 형식이 달라진다. 따라서 반말을 쓴다는 것은 상대방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겠다는 제안이자, 정서적 거리감을 줄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한국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복잡한 높임말 체계를 가진 언어 중 하나다. 같은 의미의 문장도,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뀐다. 예를 들어, “밥 먹었어?”는 반말이고, “식사하셨어요?”는 존댓말이며, “진지 드셨어요?”는 더 높임말이다.
이처럼 말투 하나로 상대에 대한 인식, 태도, 감정까지 드러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말의 높낮이는 한국에서 관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말은 단순히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사이엔 예의 차릴 필요 없어. 그만큼 가까워졌어’라는 의미가 담긴다. 이는 한국인에게는 친밀함과 신뢰의 표현이지만, 외국인에게는 사전 설명 없이 다가왔을 때 ‘관계 규칙을 갑자기 바꾸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리사의 사례가 바로 그런 경우다. 캐나다에서는 말투가 바뀌는 일이 드물고, 바뀐다면 그 자체가 관계에 무언가 큰 변화가 생겼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반말로의 전환이 친밀함이라는 한국식 표현이었을지라도, 리사에게는 그것이 예의 없음, 경계 무시, 거리 조절 실패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언어 오해가 아닌, 문화적 기초값이 다른 두 사회가 마주쳤을 때 흔히 벌어지는 충돌 중 하나였다.

 

4. 감정 변화: 불편함에서 이해로, 그리고 조율로 !

처음엔 혼란스럽고 상처받았던 리사는 점차 한국 친구들의 말투 변화가 무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친구와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고, 자신은 여전히 존댓말이 편하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그 대화를 계기로 친구는 “내가 너무 한국식으로만 생각했나 봐. 미안해!”라며 미소 지었고, 이후로는 다시 존댓말로 돌아갔다. 그 작은 배려 하나가 리사에게는 큰 안도감과 존중으로 다가왔다.

리사도 그 후 한국어의 반말과 존댓말을 조금 더 공부하며, 상대방이 왜 말을 놓으려 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가까운 친구가 "너 이제 반말 써도 돼"라고 말해주면, 스스로 그 신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천천히 말을 놓아 보기도 했다.
문화적 거리감을 좁히는 건 강요가 아니라, 존중을 바탕으로 한 조율임을 그녀는 체득했다.

 

5. 결론 메시지: 말투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배려하려는 태도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어떤 사회에서는 반말이 친밀함의 표시지만, 또 다른 사회에서는 경계선이 사라지는 불편한 변화가 될 수 있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문화, 그리고 관계의 규칙이 담긴 상징이기 때문이다.

리사는 이제 안다. 자신이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 그걸 솔직하게 표현하고, 친구도 그것을 존중해줄 때 진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를 가졌더라도, 대화와 이해를 통해 공존의 방식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반말은 한국에서는 친근함의 표현이었고, 리사에게는 조심해야 할 영역이었다. 하지만 서로가 상대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노력만 있다면, 말투의 높낮이보다 훨씬 더 깊은 마음의 존중과 배려가 오고 갈 수 있다.
그것이 진짜 글로벌 소통이고,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문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