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 제기: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지?” – 침묵 속에서 길을 잃은 미국인 케빈
케빈은 뉴욕 출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한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IT 기업에 파견되어 서울에서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미국에서의 풍부한 업무 경험 덕분에 자신감도 가득했다. 첫 회의에 참여한 그는 활발한 토론을 예상했지만, 전혀 다른 장면을 마주했다.
회의 중 팀장이 “이 안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묻는 순간, 회의실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정적에 휩싸였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기류만이 공간을 채웠다. 케빈은 잠시 당황했지만, 미국에서처럼 자신만이라도 의견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손을 들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 이후, 회의 분위기는 오히려 얼어붙었고 사람들은 더 조용해졌다.
회의가 끝난 뒤, 한 동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는 한국이라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는 게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케빈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날 이후, 그는 매번 회의 때마다 입을 열기 전 주변 분위기를 먼저 살피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한국에서 ‘무엇을 말할지’보다 ‘언제 말해야 할지’를 먼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에게 매우 낯설고 불편한 일이었다.
[2] 문화적 비교: 표현해야만 전달되는 문화 vs 표현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문화
미국 사회는 개인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여긴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의견을 숨기지 말고 표현하라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케빈이 자란 환경에서는, 어떤 주제가 주어졌을 때 침묵하거나 대답을 피하는 것은 관심이 없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으로 간주되곤 했다.
오히려 솔직하게 말하고, 때로는 반대 의견도 주저 없이 제시하는 것이 성숙함과 리더십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이는 미국의 직장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 깔린 커뮤니케이션 철학이기도 하다. 회의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의견이 설령 다르더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미국의 학교에서도 발표는 매우 중요한 활동으로 평가된다. 초등학교부터 학생들은 수업 중 질문에 손을 들고 대답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발표하는 훈련을 꾸준히 받는다. 케빈에게 있어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는 행위로까지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케빈이 한국에서 경험한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고맥락 문화(High-context culture)’로 분류된다. 고맥락 문화란, 말보다 눈빛, 표정, 말투, 분위기, 위계 등 비언어적 요소가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모든 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의중을 먼저 파악하고, 분위기를 고려해 말하는 것이 배려와 사회성의 일부로 여겨진다. 특히 조직 내에서는 나이와 직급, 관계의 깊이에 따라 말투와 발언 순서까지 신경 써야 한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회의 중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경솔하거나 튀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한국 직장인들은 회의 전후에 개별적으로 의견을 나누거나, 회식 자리에서 비공식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그래서 케빈처럼 직접적이고 즉흥적인 표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한국인의 침묵과 간접 표현 방식이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는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눈치로 전달받아야 하는 구조 안에서, 매번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긴장하게 되었고, 그 긴장감은 문화적 장벽으로 점점 커져갔다.
결국, 이 두 사회의 차이는 단순한 언어 표현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거리’와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근본적인 문화 차이였다. 미국은 "말해야 전달된다"는 문화이고, 한국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는 문화다.
그 차이가 바로, 케빈이 처음에 적응하지 못했던 진짜 이유였다.
[3] 결론 및 메시지: 말과 눈치,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소통의 방식
시간이 지나며 케빈은 이 차이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쌓아온 의사소통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회의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 침묵 속에도 수많은 신호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회의 전후로 따로 의견을 주고받는 한국식 커뮤니케이션을 받아들이면서, 케빈도 스스로 조금은 유연해졌다. 동시에, 그는 한국 동료들에게도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먼저 말을 건네는 방식을 통해 미국식 개방성과 자율성을 소개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부딪히는 대신, 보완되며 조화롭게 공존하는 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문화는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은 불편함으로 시작되지만, 이해하려는 태도만 있다면 서로에게 배움이 된다.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사회와, 말해야만 전달되는 사회 사이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배운다. 소통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고, 오직 ‘존중’이라는 원칙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국의 눈치 문화는 케빈에게 어려움이었지만, 결국 상대방을 배려하는 또 다른 표현의 방식임을 그는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말뿐만 아니라, 눈빛과 분위기까지 읽는 글로벌 커뮤니케이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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