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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말하는 한국문화

일본인은 왜 한국의 스킨십 문화에 놀랐을까? – 거리감의 미학과 정서적 표현의 차이

by info-srch 2025. 4. 11.

1. 문제 제기: 팔짱 한 번에 느낀 거리감, 한국은 왜 이렇게 가까울까

일본 도쿄에서 온 유키는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반 친구들과 빠르게 가까워졌다. 주말이면 함께 카페를 가고, 저녁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자연스럽게 유키의 팔짱을 끼며 “이제 우리 진짜 친해진 거지?”라고 말했을 때, 유키는 순간 몸이 굳었다.
분명 싫지 않은 친구였고, 대화도 즐거웠지만, 예고 없이 가까워진 신체적 거리는 유키에게 낯선 감정과 함께 가벼운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웃으며 반응했지만 속으론 “내가 뭔가 신호를 잘못 보낸 걸까?”, “이건 좀 빠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혼란이었다. 한국 친구들은 거리낌 없이 팔짱을 끼고, 어깨를 툭 치며 장난을 걸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보기 어려운 행동들이 한국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유키는 그제야 본격적으로 궁금해졌다.
“한국은 왜 이렇게 가까울까?”

 

2. 일본의 문화: 신체적 거리 유지가 곧 예의

일본 사회에서는 개인의 경계와 물리적 공간을 철저히 지키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매너를 넘어, 타인을 배려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예절로 여겨진다. 신체 접촉은 보통 가족이나 연인처럼 특별히 가까운 관계에서만 허용되며, 그 외에는 되도록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성숙한 관계’의 조건으로 간주된다.
친구나 동료 사이에서도 팔을 잡거나 등을 두드리는 행동은 매우 드물고, 특히 공식적인 자리나 공공장소에서는 상대방의 몸에 닿는 일이 거의 없다. 일본에서는 신체적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법이며, 타인의 사적 공간을 넘지 않는 태도가 사회 전체에서 높이 평가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에서도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몸이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좌석 간 간격이 좁더라도 최대한 소리와 행동을 절제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세심함은 일본인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그것이 개인과 사회 사이의 균형을 지탱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 행동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지나친 친밀함의 표현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적인 경계를 침범하는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또한 일본어에는 상대방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기 위한 완곡하고 은유적인 표현이 발달해 있다. 감정의 전달 역시 말보다 표정, 눈빛, 말투의 높낮이와 같은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가치이며, 지나치게 다가가는 말투나 행동은 오히려 거리감을 벌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유키 역시 그러한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그녀에게 친구 사이의 기본 예절은 물리적 거리 유지였고, 친근함은 손을 잡기보다는 말의 선택, 표정의 변화, 조용한 공감 속에서 전달되는 것이었다. 감정을 나누는 방식도 터치보다는 말이나 분위기를 통한 ‘조심스러운 교류’가 중심이었으며, 그것이 오히려 더 깊은 배려로 느껴지는 문화였다.
그녀가 한국 친구의 팔짱이나 터치에 놀란 것은 단지 개인적 예민함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학습된 ‘심리적 거리감의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3. 한국의 문화: 스킨십은 정(情)의 또 다른 표현

한국 사회에서는 스킨십이 단순한 신체 접촉을 넘어, 정서적 유대감과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친구나 가족, 가까운 동료 사이에서는 팔짱을 끼거나, 어깨에 손을 얹거나, 가볍게 등을 두드리는 행동이 전혀 낯설지 않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친구끼리 손을 잡고 다니거나, 사진을 찍을 때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싸는 모습은 한국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단지 ‘신체 접촉’이 아니라, 정(情)을 나누는 문화적 코드로 이해된다.

‘정(情)’은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로, 단순한 애정이나 호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형성된 신뢰와 소속감, 마음의 연결을 포함한다. 이런 정을 직접적인 언어 대신 ‘행동’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스킨십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선배가 후배의 머리를 툭 치며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은 학교와 군대, 직장 등 한국 사회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관계 형성 방식이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는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이는 절대 낯설거나 불편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친구가 거리감을 느끼고 접촉을 피할 경우, “내가 뭔가 실수했나?”, “마음이 멀어졌나?”라는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에서는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로 연결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에게 스킨십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당신을 편하게 생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되는 셈이다.

또한, 한국은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강한 문화권이다. 가족, 학교, 직장 등에서 개인보다는 집단 내 유대와 소속감이 더 중시되며, 이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함께 밥을 먹고, 등을 토닥이며, 어깨를 감싸주는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는 같은 편이다’는 소속감을 확인하는 행위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는 스킨십이 단지 친함을 넘어, 감정 전달의 도구이자 관계 유지의 언어가 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한국의 특성상, 이런 접촉은 애정, 위로, 격려, 또는 환영의 표현으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다소 빠르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오히려 ‘배려의 표현’이며 정서적 친밀감을 전하는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인은 왜 한국의 스킨십 문화에 놀랐을까?

4. 감정의 변화: 오해에서 이해로, 거리를 좁히는 시간

시간이 지나면서 유키는 한국 친구들의 스킨십이 불편함이나 무례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항상 그녀를 챙겨주었고, 작고 사소한 접촉을 통해 유대를 표현했다. 그녀가 아플 때 어깨를 토닥여주고, 기분이 좋아 보이면 장난스럽게 팔짱을 끼는 행동에서 진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유키는 한국에 적응하는 동안 스킨십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자신이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땐 정중하게 이야기했고, 친구들은 그것을 존중해주었다. 그 과정을 통해 유키는 ‘거리두기’라는 익숙한 방식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방식의 감정 교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때때로 먼저 친구의 손을 잡기도 하고, 가벼운 어깨 동무로 응원을 표현하기도 한다.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운 것이다.

 

5. 결론 메시지: 문화는 다르지만, 마음은 통할 수 있다

유키가 경험한 한국에서의 스킨십 문화는 처음엔 혼란이었지만, 결국 이해와 적응, 존중으로 이어진 소중한 경험이었다. 문화란 단순히 다름이 아니라, 그 다름 속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며,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다.
어떤 사회에서는 스킨십이 ‘예의 없음’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회에서는 ‘정의 표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도와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다.

글로벌 시대에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오해하기보다는, 그 손길이 닿은 이유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유키의 여정은 단지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이었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