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입 –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 왜 더 긴장되죠?”
서울로 교환학생을 온 태국 출신의 대학생 파티마(Fatima)는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이상하리만큼 낯선 감정을 느꼈다. 차량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조용한 배경 속에서 들리는 건 휴대폰 진동,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멀리서 흘러나오는 지하철 안내방송뿐이었다.
그녀가 친구에게 짧게 전화를 걸어 “지금 도착했어”라고 말했을 때, 순간 몇몇 시선이 자신을 향했고, 그 짧은 순간이 주는 무언의 압박감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누군가 나를 혼내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긴장됐어요. 그냥 말했을 뿐인데, 제가 뭔가 질서를 깨뜨린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이 장면은 단순한 ‘조용함의 문화’ 차이로 해석되기에는 너무 복합적이다.
파티마가 경험한 건 물리적 소리의 유무가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말을 한다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해석의 충돌이었다. 즉, 그녀는 단순히 전화를 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무언의 질서’와 정서적 긴장감의 상징인 침묵을 ‘깨뜨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조용함’은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 구조와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의 조용함은 공공질서의 상징이자 예의의 표현, 즉 ‘성숙한 시민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태국에서는 그러한 정적이 오히려 사회적 압박, 긴장, 위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왜 공공장소의 침묵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길까?
그리고 태국처럼 활기찬 공공 분위기를 일상으로 여겨온 이들에게, 그 침묵은 왜 때로는 사회적 배제처럼 느껴지는가?
이 글은 그 질문을 중심에 두고, ‘조용함’이라는 비언어적 사회 규범이 문화마다 어떻게 다른 감정 윤리로 구조화되는지를 탐구한다.
2. 분석 – 한국의 ‘조용함’은 자율이 아닌 내면화된 사회 질서의 언어
한국 사회에서 공공장소의 조용함은 단순히 소음을 줄이기 위한 환경적 배려나 개인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 조용함은 사회적 규범이 감정 표현 방식을 어떻게 제한하고 구조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정서적 코드다.
표면적으로는 ‘타인을 배려하는 예의’로 설명되지만, 보다 깊은 차원에서는 사회적 위계, 체면 문화, 공동체 중심 질서가 만든 감정 억제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문화심리학자 Hazel Markus와 Shinobu Kitayama는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사회를 ‘억제된 자아(self-restrained self)’를 이상으로 삼는 문화로 분류했다. 이런 사회에서 이상적인 시민상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공동체 내 질서를 해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지하철, 대중교통, 병원, 엘리베이터 등 특정 공공장소에서의 정숙함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규칙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화적 연출(performance)로 기능한다.
이러한 감정 억제 구조는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적 위계 질서와 타자 중심의 시선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타인의 시선이 감정의 통제 장치로 작동하며, 침묵은 ‘배려’이기 이전에 ‘질서 안에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 맥락에서 조용함은 무(無)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승인된 감정 표현 방식이며,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자기 연기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의 조용함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 사회적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내면화된 통제 장치다. 그 속에는 “불편을 주지 말 것”, “시선을 받지 말 것”,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말 것”이라는 비가시적 규범의 지도가 깔려 있으며, 이는 공공장소에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자아를 설계하게 만드는 문화적 권유로 작동한다.
3. 비교 – 태국은 왜 조용하지 않은 공공장소를 불편해하지 않는가?
태국 사회는 한국과 달리, 공공장소에서의 소리나 대화, 웃음과 같은 감정 표현을 억제하지 않는 문화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도심의 대중교통, 시장, 카페, 심지어 공공기관 내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말을 나누고, 웃고, 소리 내어 반응하는 분위기는 일상적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조용하지 않음’은 무질서의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공간이 살아있고, 공동체가 작동 중이라는 안도감의 표현이 된다. 이러한 문화적 기반에는 정서의 흐름을 통제하지 않으려는 불교적 가치관과,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공동체적 정서 운영 방식이 존재한다.
문화심리학적으로 이는 ‘자기 개방형 정체성(self-expressive self)’으로 분류된다.
이 문화에서는 감정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성하는 정체성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드러내야 신뢰가 형성된다는 윤리적 전제가 작동한다. 공공장소는 이러한 개방성을 바탕으로 ‘질서의 공간’이라기보다 ‘관계의 흐름이 살아 있는 장’으로 인식된다.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에서도 주변의 소리를 일정 수준 허용하고, 타인의 대화를 통제하려 들지 않는 것은, 자기감정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 표현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암묵의 반영이다.
따라서 태국 사회에서 침묵이 길어지는 공간은 무언의 긴장 또는 권위의 존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침묵이 자유가 아닌 ‘감정 억제의 결과’처럼 느껴지며, 그 조용함이 주는 정적이 오히려 사회적 위축, 감정의 차단, 비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공장소에서의 조용함은 태국인에게 불편한 예의이며,
소리의 흐름은 오히려 공동체 감각을 확인하는 정서적 안정 장치로 작동하는 것이다.
4. 결론 – 침묵은 소리 없는 언어다: 조용함을 둘러싼 감정 윤리의 해석 차이
조용함은 단순히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 표현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각 문화의 기대와 통제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징적 행위다.
한국 사회에서 공공장소의 침묵은 배려와 예의, 자아 억제의 윤리적 이상을 나타내며, 이는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요청받는 사회적 질서의 일부다.
반면 태국 사회에서 조용함은 반드시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조용한 공간은 정서적 위축, 관계 단절, 불필요한 경직의 신호로 읽히며, 소리의 흐름은 공동체의 온기를 유지하고 감정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침묵이 질서를 의미하는 문화도 있고, 긴장을 의미하는 문화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조차 문화적 기호로서 해석되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결국 ‘조용하다’는 것은 물리적 상태가 아니라, 각 사회가 이상적인 자아와 공존 방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감정 윤리적 언어다.
조용함은 때로 배려이지만, 때로는 통제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는 침묵이 곧 공감이며, 다른 사회에서는 그것이 단절이나 거리감으로 읽힐 수도 있다.
따라서 문화 간 이해는, 우리가 사용하는 ‘비언어적 행동의 의미’를 절대적 기준이 아닌 상대적 질서로 읽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말 없는 공간조차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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