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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말하는 한국문화

외국인이 처음 느낀 한국인의 ‘정(情)’은 어떤 감정일까

by info-srch 2025. 4. 21.

‘정(情)’이라는 감정의 문화적 특수성과 외국인의 첫인상

한국 사회에서 정이라는 감정은 단순한 친절이나 동정심으로 정의되기 어렵다. 정은 시간의 흐름과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감정의 형태로, 특정 관계 안에서만 완전히 형성되는 감정적 결속이다.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처음 경험하면서 느끼는 정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호의로 인식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인의 관계 중심적 감정문화의 정수를 드러내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러한 정은 영어권 문화에서 사용하는 affection이나 emotional closeness와 유사한 개념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배경에는 유교적 가치관, 공동체 의식, 그리고 가족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외국인은 이러한 정서적 행동을 처음 접할 때 문화적 친절함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그 깊이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거나 의문을 품게 된다. 정이라는 감정은 한국인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이지만, 외국인에게는 그 근본적 의미가 낯설고 해석이 어려운 감정적 코드로 작용한다.

 

외국인이 처음 느낀 한국인의 ‘정(情)’은 어떤 감정일까

‘정(情)’의 심리사회학적 구조와 외국인의 감정 해석

정이라는 감정은 단순한 인간 간의 친밀감이나 선의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한국 사회 내에서 공유되는 감정적 규범이며, 사람들 사이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와 유대 강화를 위한 일종의 ‘비공식적 정서 계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외국인이 처음 한국에서 정을 경험하게 되는 상황은 대개 예상하지 못한 친절의 순간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외국인 유학생이 감기에 걸렸을 때 룸메이트가 따뜻한 미음을 끓여주는 일, 동네 가게 사장님이 매번 작은 과일을 덤으로 챙겨주는 모습은 정이라는 감정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때 외국인은 감사함과 동시에, 이 친절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어떤 사회적 의무에 기반한 것인지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서구권에서는 인간관계의 선이 명확히 설정되어 있고, 이러한 과도한 친절은 사적인 영역 침범으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인간관계를 일방적인 선의나 친절로 나누기보다는 상호작용의 연속적 흐름 속에서 정을 주고받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관계 지속성 중심의 collectivism, 즉 집단주의 문화의 심층적 구조와 맞닿아 있으며, 개인주의적 문화에서 자란 외국인에게는 낯설고 때때로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외국인이 한국인의 정을 경험할 때 겪는 심리적 반응은 대부분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걸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여기에는 상호성의 기대, 즉 정을 받았으면 언젠가는 돌려줘야 한다는 무형의 의무감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감정의 상업화나 전략적 친절로 오해될 소지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은 철저히 감정적이고 관계 중심적이며, 이성적 계산보다는 인간적 유대를 중시하는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외국인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이라는 고유한 감정이 오히려 문화적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정서적 충돌과 문화 번역의 실패

외국인이 한국의 정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되는 순간은 기대와 혼란이 동시에 발생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관계 형성이 곧 감정 교환의 시작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한 만남조차도 정서적 기대를 동반한다. 그러나 외국인의 문화권에서는 관계 형성과 감정 교환이 동일한 선상에 놓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 출신의 외국인이 한국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과정에서 자주 겪는 오해는 상대가 너무 빠르게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려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감정의 거리 두기가 존중의 표현일 수 있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를 냉담함이나 무관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이런 감정 코드의 차이는 상호 불신이나 오해를 유발할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은 나를 너무 빨리 가까운 사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관계의 깊이에 따라 감정의 농도가 달라지는 외국 문화와 달리, 한국은 ‘관계의 유무’보다는 ‘관계를 맺는 태도’에서 감정이 생성된다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외국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정이 강요된 감정처럼 느껴질 수 있으며, 오히려 거리감을 두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는 곧 감정 번역의 실패로 이어진다. 감정 번역이란 상대 문화권의 감정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 구조로 변환하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문화적 문법이 다르면 감정은 왜곡되거나 왜 이해해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해진다. 더욱이 한국의 정은 비언어적 표현이 많고, 분위기나 암묵적 규범을 통해 전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명확한 언어적 단서 없이 복잡한 감정을 해석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외국인으로 하여금 문화적 소외감, 정체성의 혼란, 심리적 경계 설정 등 다양한 정서적 반응을 유발하며, 결국 정이라는 감정이 그들에게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으로 남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처럼 정은 한국인에게는 관계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지만, 외국인에게는 문화적 해석이 선행되지 않으면 오해와 부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정(情)’을 통한 문화 교류와 감정의 보편성에 대한 가능성

정이라는 감정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공동체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외국인이 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닌, 그 배경에 깔린 사회적 의미와 관계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감정 문법(emotional grammar)에 대한 문화적 습득이 필수적이다. 감정 문법이란 특정 문화 안에서 감정이 어떻게 생성되고 표현되며 해석되는지를 규정하는 사회적 규칙 체계이다. 외국인이 정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과정은 단순한 문화 적응의 단계를 넘어서는 ‘정서적 사회화(emotional socialization)’의 일환이다. 이 과정을 통해 외국인은 관계 중심적 감정 구조를 내면화하게 되며, 점차 정이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정은 결국 보편적인 인간 감정의 한 유형이자, 특정 문화 안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한 감정이다. 외국인이 정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다양하더라도, 그들이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정은 단지 한국적인 감정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새로운 보편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