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말하는 한국문화

"한국의 선배-후배 문화가 왜 미국인에게 '군대 같다'는 인상을 주는가"

info-srch 2025. 4. 19. 11:46

1. 도입 – 왜 ‘군대 같다’는 말이 나왔는가

브라이언은 미국 동부의 자유로운 캠퍼스 문화에 익숙한 23세 대학생이었다.
한국으로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한 그는, 처음으로 참여한 학과 동아리 모임에서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회식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후배들은 자리 배치부터 조심스러워했고, 선배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음식을 손도 대지 않은 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가 시작되자 후배들은 맥주잔을 양손으로 들고 선배들에게 술을 따르기 시작했고,
어떤 후배는 잔을 들고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까지 했다.
선배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브라이언에게 낯선 충격이었다.

그는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저건 진심으로 웃는 건가, 아니면 웃어야 해서 웃는 건가?"
자리를 옮겨 앉는 것도, 말을 꺼내는 것도 선배의 눈치를 살핀 뒤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은, 그가 알고 있던 '대학생활'의 개념과 완전히 달랐다.


이러한 경험 이후, 그는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냥 선후배 사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다들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요? 군대에서 상사 대하듯 하더라고요. 정말, 군대 같았어요." 이 말은 단순한 감정의 과장이 아니었다.

한국의 선배-후배 문화는 연령과 입학 순서에 따른 관계 질서를 일상적 상호작용 전반에 깊게 뿌리내리게 만든 문화적 구조이자, 언어와 감정, 행동을 규율하는 사회적 위계체계로 작동하고 있었다.

 

본 글은 이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왜 외부인의 시각에서 '군대 같다'는 평가로 이어지는지를 문화사회학, 언어사회학, 권력심리학의 시각을 통해 다층적으로 탐구한다.

 

 

2. 분석 – 한국의 선후배 관계는 비공식 위계가 제도처럼 작동하는 문화사회학적 구조다

한국의 선배-후배 문화는 단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예우하는 예절 차원의 문화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비공식적 위계 구조로, 법률이나 공식 규정에 명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와 유사한 수준으로 강력하게 작동하는 사회적 규범이다.
학교, 직장, 동아리, 심지어 친구 관계에 이르기까지, 선배는 상징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후배를 '지도'하거나 '이끌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후배는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예의’와 ‘배려’를 수행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가 전제된다.

 

문화사회학적으로 이 구조는 단순히 한 사람의 영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해온 유교적 질서와 집단주의적 문화 안에서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화된 사회적 규율이다.
특히 교육기관에서의 위계는 나이나 입학 연차만으로 정당화되며, 개인의 능력이나 관계의 친밀도와는 별개로 선배는 '말을 꺼낼 권리'를, 후배는 '경청하고 따를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작동한다.

문제는 이러한 위계 구조가 관계의 수직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자리 잡으면서, 개인의 감정 표현, 의견 개진, 행동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구조적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후배는 선배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조차 망설이게 되며, 이는 단순한 예의범절을 넘어 관계 내에서 감정적 위축과 자율성의 상실로 이어지기 쉽다. 이처럼 한국의 선후배 문화는 겉으로는 ‘존중과 배려’라는 이름을 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권위와 복종, 보호와 의존이라는 감정 구조를 내면화시키는 문화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브라이언과 같은 외국인의 시각에서 이 문화는 매우 낯설고 때로는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평등한 발언권과 수평적 관계를 전제로 성장해온 사람에게는, 나이나 입학 순서만으로 상하 관계가 결정되고 그에 따른 감정 규범이 고정되는 구조가 매우 이질적이며, 때로는 군사조직이나 위계적 행정체계에서나 존재할 법한 방식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이 문화는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 안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에겐 일상 속의 감정 통제 체계로서 작동하는 비가시적 제도로 경험된다.

 

"한국의 선배-후배 문화가 왜 미국인에게 '군대 같다'는 인상을 주는가"

3. 비교 – 미국인의 시선에서 본 선후배 관계: 언어와 권력의 정서적 작동 방식의 차이

미국 문화권에서 브라이언과 같은 외국인이 한국의 선후배 관계를 낯설게 느끼는 이유는 단지 ‘질서가 다르다’는 차원을 넘어서, 그 질서가 사람들의 말투, 감정 표현, 상호작용 방식에까지 뿌리 깊게 침투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미국은 근본적으로 평등주의적 정서 기반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계를 설계해왔으며, 이 평등성은 언어 사용, 감정 표현, 상호 존중의 방식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언어사회학적으로 미국 영어는 지위와 위계보다 친밀감과 동등성을 우선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상사든 교수든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상대를 높이기 위한 문법적 체계나 강제적인 언어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의 권리가 우선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그로 인해 발언은 항상 상대방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환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심지어 반박이나 이견 제시도 ‘건설적 대화’로 받아들여지는 맥락이 형성되어 있다.

반면 한국어는 발화 구조 자체가 상대방의 지위나 나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구성하기 어려운 언어다.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단어 선택과 문장 구조가 완전히 달라지고, 이를 어겼을 경우 감정적 불쾌감이나 관계적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 구조는 사회적 위계를 말투와 어휘로 끊임없이 학습시키며, 결국 발화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관계 질서를 정립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사회적 기호로 작동한다. 그 차이는 권력심리학적 수준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은 권력의 존재 자체보다는, 그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느냐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위가 높다고 해도, 그 사람이 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하면 조직 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개인은 권위에 복종하기보다는 질문하고 협의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이는 조직 내에서도 개인이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자율성과 판단력을 가진 독립된 주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심리적 기대가 전제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의 선후배 문화는 권위에 대한 도전보다 수용을 우선하며, 감정의 수평적 교류보다는 질서의 유지와 조화를 중시한다. 그 결과, 후배는 스스로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분위기를 살피고, 선배의 반응을 기준으로 감정을 조절한다.
이와 같은 정서적 구조는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군대와 같은 상하 복종 체계, 혹은 ‘일상 속 통제 구조’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4. 결론 – 위계는 언어 이전의 감정 구조이며, 자아를 설계하는 문화적 문법이다

한국의 선배-후배 문화는 단순히 연령이나 입학 순서에 기반한 관계 규범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각인되고, 감정을 조율하며, 개인의 행동까지 규율하는 하나의 사회적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제도적으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음에도, 정서적 압력과 문화적 기대를 통해 구성원들의 행동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나아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구조적 작동 방식 때문에, 한국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선배-후배 관계가 일상의 위계와 통제를 내면화시키는 감정적 규율 체계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평등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자아를 형성해온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위계는 단지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개인의 정체성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구조적 불편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군대 같다'는 평가는 과장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긴장과 복종의 감정을 체감한 경험의 서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인간관계의 운영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각 사회가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자아’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자아가 언제, 어떻게 말을 꺼내고, 감정을 표현하고, 위치를 정립하는지를 어떤 문화적 문법 위에서 허용하거나 억제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선배-후배 문화는 조화를 중시하는 감정 윤리와 위계적 상호작용의 정착을 반영하고 있으며, 미국의 평등주의는 자율성과 대등한 의사표현이 존중받는 감정 구조에서 비롯된다.

 

결국 이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한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계 속에서 감정이 어떻게 배치되고,
그 감정이 자아의 구조와 사회적 질서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선배와 후배'라는 일상적 호칭이 어떻게 관계를 규정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결국 인간 존재의 위치마저 설정하는가에 대한 문화적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